[법무법인 민후 노재일 변리사] 특허권은 무체물을 보호객체로 하는 무체재산권이므로 유체물을 대상으로 하는 소유권 등과 달리 타인의 모방과 도용이 쉬운 반면 그 침해 사실의 발견이나 증명이 어렵다. 이에 특허법은 특허권을 직접 침해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간접 침해(특허법 제127조)까지 확장하여 침해를 인정하고, 손해를 추정하는 특별 규정 등을 두어 특허권의 보호를 강화하고 있다.
특허발명의 보호범위는 청구범위에 적혀 있는 사항에 의하여 정하여지는 것이 원칙(특허법 제97조)이며, 다수의 판례 또한 ‘특허발명과 대비 대상이 되는 물건 또는 방법이 특허 청구범위에 기재된 구성요소들 중 일부만을 갖추고 나머지 구성요소를 제외하고 있는 경우에는 그 대상물건 등은 특허발명의 보호범위에 속하지 아니한다’는 일관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렇다면 특허발명이 복수의 구성요소를 포함하고, 각 구성 요소를 복수의 주체가 나누어 실시하는 경우 특허권의 침해를 인정할 수 있을 것인지 여부가 문제된다.
예컨대, 특허발명 A가 a+b+c로 구성된 물건발명의 경우, 구성 a를 甲 생산하고, 구성 b를 乙이 생산하고, 구성 c를 丙이 생산하며, 구성 a, b, c를 丁이 구입하여 a+b+c로 조립하는 경우 丁에게는 발명 A 실시를 이유로 직접 침해의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이지만 각 구성만을 생산한 甲, 乙, 丙에게는 특허법 제127조 소정의 간접 침해 요건인 ‘발명 A의 실시에만 사용되는 물건의 생산’을 만족하지 못하면 특허침해에 관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유사하게, 특허발명 B가 단계 1, 단계 2 및 단계 3으로 구성된 방법발명인 경우 단계 1, 2, 3을 甲, 乙 丙이 나누어 실시하는 경우 그 누구도 단계 1, 2 및 3을 포함하여 실시하지 않으므로 특허권자로서는 누구에게도 직접침해를 주장할 수 없게 된다.
이와 같이 특허발명의 각 구성을 복수의 주체가 나누어 실시하는 경우는 동일 사업 분야, 협업 관계 및 공동 사업 관계 등에서 빈번하게 발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수 주체에 의한 실시 태양을 종합하면 특허발명의 실시임에도 불구하고 그 실시 주체가 복수라는 이유로 특허 침해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발명을 보호 장려하고 그 이용을 도모함으로써 기술 발전을 촉진하여 산업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특허법의 목적에 정면으로 반하는 결과가 도출되는 것이다.
그러나 복수의 주체가 특허발명의 각 구성을 나누어 실시하는 경우에도 단일 주체 책임의 특허 침해가 인정될 수 있으며, 또는 복수의 주체의 공동 특허침해가 인정될 수 있음에 유의하여야 한다.
최근 서울고등법원은 ‘복수 주체가 단일한 특허발명의 일부 구성요소를 나누어 실시하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① 복수 주체 중 어느 한 단일 주체가 다른 주체의 실시를 지배·관리하고 그 다른 주체의 실시로 인하여 영업상의 이익을 얻는 경우에는 다른 주체의 실시를 지배·관리하면서 영업상의 이익을 얻는 어느 한 단일 주체가 단독으로, ② 복수 주체가 각각 다른 주체의 실시행위를 인식하고 이를 이용할 의사, 즉 서로 다른 주체의 실시행위를 이용하여 공동으로 특허발명을 실시할 의사를 가지고, 특허발명의 전체 구성요소를 나누어 실시하는 경우에는 이들 복수 주체가 공동으로 특허침해를 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라고 판시하면서 복수 주체의 공동 직접침해를 인정한바 있다. 또한, 위 사건은 기존의 방법 발명에 적용되던 이론을 물건발명에도 적용한 사례로 그 의의가 있다.
즉, 복수의 주체가 지배·관리관계에 있는 경우 단일 주체 단독의 직접침해가 인정될 수 있으며, 복수의 주체가 대등한 관계에 있는 경우 복수 주체가 모두 공동 직접침해자가 될 수 있다.
특히 Akamai v. limelight case(미국연방항소법원 전원합의체 2016. 7. 1) 에서는 ‘공동 사업’ 관계가 인정되는 경우 공동 직접침해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시한바 있으며, 미국 불법행위법 상의 공동사업의 원칙에 의해 ① 그룹의 당사자들 사이에 명백하거나 암시적인 동의 ② 그룹에 의해 수행되는 것에 대한 공통의 목적 ③ 각 당사자들 사이에 그러한 목적에 있어서 공동체의 금전적 이익 ④ 통제에 대한 평등한 권리를 주는 각 사업체의 지시에 있어서 발언에 대한 평등한 권리의 요소를 고려하여 대등한 관계 여부를 판단하고 복수 주체 모두에게 공동 직접침해를 인정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정리하면, 복수의 주체 사이에 지배·관리 관계가 있는지 또는 대등한 관계가 인정되는지 여부에 따라 단일 주체에게 특허침해를 인정하거나 복수의 주체 모두에게 공동의 특허침해를 인정할 수 있다는 차이점을 가질 뿐, 복수의 구성요소를 가진 발명을 복수의 주체가 나누어 실시하는 경우에도 특허발명의 침해가 인정될 수 있다 점에 주목하여야 한다.
현대의 발명은 단일 구성요소로 구현되기 보다는 고도의 기술에 의해 형성된 구성요소들이 서로 유기적인 결합 관계를 이뤄 하나의 발명을 구성하는 경우가 다수이다.
예컨대, 네트워크 발명, 시스템 발명 및 비즈니스 모델 발명과 같이 다수의 독립된 구성이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발명에 있어, 발명자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어디에 중심을 두고 있는지 명확하게 특정하고, 출원단계부터 전문가와의 긴밀한 논의를 통해 청구항을 작성함으로써 추후 복수 주체의 실시행위가 자신의 발명을 회피하는 방안으로 사용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또한, 사업을 영위하는 자는 자신의 실시 기술이 타인 특허발명의 권리범위에 포함되는지 여부를 검토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실시 태양이 다른 실시 주체의 실시태양과 결합되어 타인 특허발명의 권리범위에 포함되는지 함께 검토함으로써 타인의 재산권 침해로 인한 책임을 예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