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소재

故 최종현 회장 '기술 퍼스트' DNA 계승…SK이노, R&D 40년 특별했다

이건한 기자
이지환 카이스트 경영학과 교수가 8월28일 SK서린빌딩 수펙스홀에서 SK이노베이션의 R&D 경영 40년 연구분석 성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지환 카이스트 경영학과 교수가 8월28일 SK서린빌딩 수펙스홀에서 SK이노베이션의 R&D 경영 40년 연구분석 성과를 발표하고 있다.

[디지털데일리 이건한 기자] “많은 석유화학 기업들이 신성장 동력 발굴을 등한시하다 시장이 어려워지면서 그 영향을 고스란히 받았다. 반면 SK이노베이션은 신약사업을 30년을 바라본 것처럼 굉장히 긴 관점에서 R&D(연구개발)에 노력을 기울여 온 회사다. 또한 R&D 자금의 충분 여부와 별개로 당장 수익이 되는 사업만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작업은 굉장한 의지와 시스템 없이 쉽지 않은 일이다.”

SK이노베이션은 28일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 수펙스홀에서 'SK이노베이션 40년 R&D(연구개발) 경영' 성과 발표회를 개최했다. 성과 분석은 전미경영학회 국제경영분과 회장인 송재용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교수와 이지환 카이스트 경영학과 교수가 맡았다. 송 교수는 삼성전자의 성장을 분석한 ‘삼성웨이’, ‘패러다임 대전환’ 등의 저자이기도 하다.

이 중 송 교수는 SK이노베이션과 경쟁사들의 R&D 전략이 근본적으로 어떤 차이를 지녔는지를 설명했다.

모든 기업이 R&D 중요성을 강조한다. 더 나아가 송 교수는 R&D를 얼마나 장기적으로 효율적인 관점에서 해내는지는 별개의 역량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두 교수가 R&D에 막대한 투자를 집행한 글로벌 기업들의 사례를 언급하면서도 R&D 투자액만 두고 그 성과의 연관성을 연결하기 어렵다고 설명한 이유다.

이 교수는 SK이노베이션이 R&D에 대한 명확한 철학과 함께 R&D를 반드시 수익화까지 연결한다는 ‘R&BD(연구와 비즈니스 개발)’ 기조를 40년간 유지한 것이 실제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져온 중요 원동력이라 설명했다.


'기술역량' 최우선, 故 최종현 회장 용단

SK그룹에 ‘R&DB SKinnoWay(스키노웨이)’로 대변되는 DNA를 최초로 심은 건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이다. 그는 회장 시절 기업의 신규사업 진출 시 ‘기술역량’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봤다. 일례로 1980년 당시 ‘대한석유공사(유공)’를 인수하면서 “3년 내에 성과를 입증하지 못하면 경영권을 반납하겠다”고 선언하고 자원 안보와 기술 개발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듬해 1981년 1월 유공 울산 공장 첫 방문 시에는 “구성원 복지 시설, 신규 설비, R&D 등 세 가지가 부족하다”며 R&D의 중요성을 현장에서 직접 강조하기도 했다.

이를 토대로 SK이노베이션은 1983년 울산에 국내 정유업계 최초로 ‘울산기술지원연구소’를 짓고 본격적인 R&D 경영의 원년을 시작했다. 1995년에는 대덕기술원을 추가 개원했으며 2021년 ‘환경과학기술원’으로 개칭했다. 두 교수는 특히 환경과학기술원의 출범이 SK이노베이션에 적지 않은 시사점을 남긴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SK이노베이션은 현재 석유화학 사업 매출 비중이 70%가 넘는 기업이다. 사업 전반에서 탄소배출량도 많다. 그런 가운데 환경과학기술원 출범은 회사가 본격적인 친환경, 탄소중립경영 가속화로 나아가는 발자취를 시작한 상징성이 내포됐다는 설명이다.

이는 SK이노베이션에서 환경과학기술원이 차지하는 위상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증거된다. SK이노베이션은 R&D 경영을 시작한 이래 조직도상에서 SK이노베이션과 SK온, SK엔무브 등 모든 주요 자회사 중간에 환경과학기술원을 뒀다. 대덕기술원 시절부터 이미 회사 전체가 R&D센터를 중심으로 통합적인 신사업 개발을 추진해 온 것인데, 그 중추의 이름을 환경과학기술원으로 개칭한 것은 SK이노베이션이 그린 에너지 기업으로 R&D 경영 방향을 확실히 설정했다는 의미다.


R&D도 관리 중요…리스크를 기회로 'ESG 선행'

그보다 앞서 R&D 경영의 성과로 만들어진 5개의 핵심 신사업(배터리, 분리막, 윤활기유, 신약, 넥슬렌)들도 SK이노베이션의 일관적인 R&D 경영 전략 성과를 잘 나타낸 사례로 거론됐다.

특히 현재 그린 경영의 중심축으로 성장 중인 2차전지(SK온)과 배터리분리막(SKIET)은 SK이노베이션이 단지 다양한 R&D에 관심을 두고 돈만 쏟아 부은 결과는 아니다.

이 교수는 “기업이 R&D를 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내부 구성원들의 마찰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R&D 매니지먼트’ 능력이 굉장히 중요한데, 특히 이를 기업이 제어 가능한 선에서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동안 이에 실패한 기업들이 많다는 점에서 SK이노베이션의 성공은 귀감이 되는 대목이 있다”고 말했다.

이는 SK이노베이션이 정유회사로 성장할 시점에도 ‘돈이 될 지 안될 지 모르는(배터리, 분리막 등)’ 사업들에 꾸준히 투자하고 유지한 과정이 오너의 단순 뚝심만으론 이뤄질 수 없었다는 의미다.

이 교수는 “기업들은 미래보다 현재 잘 하고 있는 사업을 더 잘하기 위해 투자하는 것이 일반적인 심리”라고 덧붙였다. 반면 SK이노베이션은 회사 상황에 따라 R&D를 키우거나 줄이긴 해도 멈추지 않고 꾸준히 해온 것들이 지금의 성과들을 만들어냈다는 것.

더불어 R&D를 대하는 근본적인 인식의 차이도 오늘날 SK이노베이션을 만든 차별 요소 중 하나다.

송 교수는 “SK이노베이션이 말하는 그린 포트폴리오 전환이 누구보다 빨랐던 건 아니었다”면서도 “전혀 반대되는 사업을 하다가 딥체인지(Deep Chainge, 완전 변화)하는 일도 쉽지 않다. SK이노베이션은 2011년부터 그린 전환을 본격화했는데 다른 기업들과 비교하면, 그들은 아직도 그린 전환을 리스크(Risk, 위험요인)로 본다. 반면 SK이노베이션은 리스크를 넘어 아예 새로운 사업 기회로 인식하고 달려온 점이 가장 큰 차이”라고 설명했다.


ⓒ SK이노베이션
ⓒ SK이노베이션

계승되는 R&D DNA…4E 혁신모델 추구

두 교수는 SK이노베이션의 이 같은 독특한 R&D 전략을 기반으로 ▲Entrepreneurship(경영철학과 도전) ▲Exploitation(기존사업 경쟁력 강화) ▲Exploration(미래형 신사업개발) 및 Expertise (기술역량) 등 '4E'로 명명된 혁신 모델을 도출했다고 발표했다.

또한 최종현 선대회장이 심은 R&D 중심 DNA는 현재 최태원 회장이 고스란히 이어받아 추진 중이다.

최 회장은 취임 후 "기술원이 미래 희망이며 기술 도약 없이 사업 도약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세계 전기차 시장이 아직 떡잎 단계였던 2011년에는 "모든 자동차가 우리 배터리로 달리는 그날까지 SK배터리 팀은 계속 달린다. 나도 같이 달리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현재 계열사 포함 총 1만명 규모인 SK이노베이션의 인력 규모 중 R&D 인력 비중은 18%다. 이는 2016년말 대비 3배 규모에 달한다.

이지환 교수(왼쪽)와 송재용 교수(오른쪽)이 발표 후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진행 중인 모습.
이지환 교수(왼쪽)와 송재용 교수(오른쪽)이 발표 후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진행 중인 모습.

이번 프로젝트를 주관한 두 교수는 “SK이노베이션이 지난 40년의 R&D 경영으로 성장해 온 것을 넘어, 새로운 40년은 고유의 새로운 정체성 창출하며 미래 기업가치 증진시킬 것 기대한다”고 평가했다.

이날 행사의 마지막을 맡은 이성준 SK이노베이션 환경과학기술원장은 “SK이노베이션이 가진 독특한 연구 시스템, R&D 초기부터 철저히 사업적 관점을 잃지 않은 것이 그동안 빠른 성과를 만든 원동력”이라며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욱 변화하고자 한다. 작은 요소가 모여 큰 기술을 만드는 현시대의 융복합 기술 시대에 발맞춰 새로운 형태, 글로벌 오픈 R&D를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이건한 기자
sugyo@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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