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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가던 K-배터리 멈칫...변수는 '광물 판가연동' [소부장박대리]

이건한 기자

칠레 앨버말 소유 리튬 광산.

[디지털데일리 이건한 기자] 올해 상반기 국내 주요 2차전지(배터리)·소재사들은 대부분 매출은 오르고 영업이익은 낮아진 성적표를 제시했다. 아울러 하반기 말에 회복될 것이란 공통의 전망도 내놨다. 이는 ‘K-배터리’의 성장성 부진이 아니라 핵심광물(메탈) 원재료 가격의 변동성과 제품의 제조-판매 시차에 따른 영향이 크다.

현재 널리 쓰이는 리튬이온전지는 양극재·음극재·분리막·전해액 등 4대 소재를 중심으로 만들어진다. 이 중 양극재는 원가의 약 40%를 담당할 만큼 존재감이 크다. 그리고 양극재는 니켈·코발트·망간 등의 광물 혼합물인 전구체와 리튬이 혼합돼 만들어진다. 주요 원재료인 광물 가격은 곧 양극재와 배터리 가격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일반적으로 원가는 저렴할수록 좋다. 판매가가 정해져 있다면 원가가 줄어야 마진폭이 커지기 때문이다. 배터리 시장은 다르다. 광물가격이 변화하면 그에 따라 양극재·배터리 가격(판가)도 변화하는 판가 연동계약이 주로 이뤄지는데, 이에 따라 매출과 수익성도 변화하기 때문에 광물 가격 변동의 영향은 상이하다.

예컨대 광물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할 땐 원재료를 최대한 많이 사서 제품을 만들면 판매 시점에는 오른 원재료 가격을 반영해 비싼 판가를 적용할 수 있다. 이때는 광물 가격이 오르는 것이 오히려 제조사들의 원가 비중을 낮추고 마진율을 높이게 된다. 평균판매가격(ASP)도 상승하므로 대외적으론 같은 물량을 팔아도 매출이 증가하게 된다. 반대로 광물 가격이 급락해 판가가 하락하면 광물이 비쌀 때 만들어 둔 재고가 수익성을 악화시킨다.

이처럼 판가 연동계약은 평시 원가의 영향을 덜 받으면서 수익성을 보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광물 가격의 변동성이 심한 시기엔 오히려 독으로 돌아올 수 있다. 국내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광물 가격이 판가에 영향을 미치기까지 약 2~3개월 정도의 시차가 존재한다.

올해 2분기와 3분기는 광물 가격 하락 영향권에 접어든 시기다. 지난해 말까지 폭등했던 주요 광물 가격들이 1분기에 급락하면서 ASP 하락에 따른 매출 감소, 재고 판매 시차에 따른 수익성 악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 지난해는 배터리 수요 증가와 메탈 가격 상승의 영향으로 매출과 수익성이 모두 증가했지만 이번에는 반대 상황에 빠지게 됐다.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2분기 실적 발표회에서 “배터리 생산의 주요 원재료인 수산화리튬 가격이 1분기 고점 대비 50% 이상 하락함에 따라 배터리 완제품 판가에는 3분기부터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주요 양극재 제조사인 엘앤에프는 올 2분기에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58.6%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95.1% 감소했다. 적자는 모면했지만 판가 하락과 재고 처리에 대한 영향이 커지면서 다른 소재사들보다 큰 타격을 입었다. 경쟁사 에코프로도 오는 3분기에는 광물 가격 하락에 따른 ASP, 수익성의 일부 하락을 예견했다.

광물 가격의 변동 자체는 개별 회사로서 대응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이에 따른 수익성 변동이 커지면서 업계도 다양한 대응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크게 광물의 자체 수급, 혹은 저렴한 공급망을 확보하거나 생산 공정 개선 및 수익선 다변화로 충격을 감쇄하는 식이다.

특히 최근에는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해외 광산 업체에 투자한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전해지고 있다. 투자를 통해 지분을 확보하고, 이를 기반으로 수년 이상 안정적인 가격에 리튬, 니켈 등 주요 광물을 확보하는 방안이다.

포스코홀딩스의 아르헨티나 리튬 염호 [ⓒ 포스코홀딩스]

예컨대 포스코 그룹은 포스코홀딩스가 아르헨티나 옴브레 무에르토 염호를 인수함으로써 염호리튬 확보 채널을 확보했으며 이를 국내로 운송 후 2차전지 관련 계열사들이 가공 및 제품화까지 이루는 수직계열화 전략에 투자를 집중하면서 원가 안정성을 높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도 호주, 캐나다, 미국 등의 광물업체들과 손잡고 리튬과 코발트 등 고가 광물의 확보 채널을 다변화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선 사급 거래도 중요하게 거론된다. 사급은 특정 업체가 재료 납품 업체를 위해 원재료 구매를 대행하는 방식이다. 배터리 업계에선 배터리 제조사나 완성차 제조사가 광산 투자 등을 통해 광물을 별도로 확보하고, 이를 소재 제조사 등에 저렴하게 공급함으로써 원가 부담을 낮춰줄 수 있다. 지난 분기 한 소재사는 영업이익 악화 원인 중 하나로 사급 중단을 꼽기도 했다.

제품의 제조공정 개선도 업계의 공통 목표 중 하나다. 광물 가격의 변동성은 제어하기 어렵지만, 평시 생산 공정의 효율을 개선함으로써 원가 절감과 생산성 향상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함이다. 특히 배터리 제조사들을 중심으로 신규 공장에 대한 ‘스마트팩토리’ 고도화 계획은 매 분기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화두 중 하나다.

이와 관련해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아직 단기적 수익성 악화는 불가피해도 업계가 대응을 위해 노력하는 만큼 그 영향력은 점점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며 "이익이 조금 감소해도 흑자는 유지될테니 중장기 성장 가능성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내년부턴 대규모 선수주 물량을 바탕으로 다시 성장세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건한 기자
sugyo@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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