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밸류業금융⑫] 어쩌면 보이스피싱보다 '금융 불완전판매'가 노인에 더 위협… 뼈아픈 역설
[디지털데일리 박기록기자]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은 당초 예상보다 1년 빠른 2025년부터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07년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
65세 이상 인구가 한 나라의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Aging Society)로 분류한다. 이 비율이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로 규정한다.
이미 국내서도 젊은층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한 몇몇 지방 도시에선 '초고령화사회'가 현실화됐다.
다만 약간의 반전이 있다. 다가올 '고령사회'의 주축(구성원)이 과거와는 다르다. 과거 노인세대와는 달리 자본력과 구매력을 가지고 은퇴하는 베이비붐 세대(1955년~1963년생)가 주축이라는 점이다.
금융권이 '실버(노인) 시장' 잡기에 혈안인 이유다.
하나은행이 트로트가수 임영웅을 모델로 발탁된 것은 이런 기류가 반영될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실제로 광고 효과도 톡톡히 보고 있다.
지난 3월 11일 유튜브 '하나TV 하나은행'에 시작된 '하나은행 자산관리의 영웅은 하나!(Full)' 영상은 이달 22일 기준 915만 뷰를 돌파했다.
과거엔 은행들이 소수의 '돈있는 부자 노인'들의 자산관리서비스를 위한 점포내 VIP라운지를 운영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비대면 디지털화된 방식으로 노인 고객층의 저변을 넓히기 위한 다양한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고령층을 위해 사용편의성을 높이고 모바일 화면의 글자를 키우는 UI·UX 전략도 보다 정교해지고있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금융권이 실버 고객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지만 "뭔가 충분하지 못하고, 방향도 어긋나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기때문이다.
보이스피싱이나 해킹 위협외에도 '홍콩ELS 사태'와 같이 정작 금융회사 직원들의 불완전판매로 인한 위험에 여전히 노인들이 많이 노출돼있기 때문이다.
◆금융권 '어르신 뱅킹' 강조하지만… "홍콩ELS 피해자 상당수는 노인"
특히 '금융 불완전판매'는 외부 범죄 집단이 아닌 금융회사 내부 직원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다는 점에서 상황의 심각성이 크다. 노인 고객들에게 가장 현실적인 위협중 하나가 다름아닌 금융회사일 수 있다는 것은 뼈아픈 역설이다.
실제로 수많은 고객들에게 피눈물을 안겨준 '홍콩 ELS 사태'의 경우, 손실 문제가 됐던 총판매 계좌에서 65세 이상 고령투자자가 8.6만 계좌(21.6%)를 차지한다.
이들은 특히 은행 점포 등 오프라인(90.5%)채널을 통해 홍콩ELS 상품에 투자했다. 피해 사례를 보면, 은행 점포를 방문해 직원의 권유와 불충분한 설명 등이 결합된 명백한 '불완전판매' 사례다.
지난 5월,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주요 홍콩 ELS 분쟁 대표 사례를 보면, 당시 신한은행에선 70대 고령자에 대한 투자성향분석시 직원이 알려주는대로 답변하도록 유도하고, 손실 위험 등을 왜곡해 설명했으며 통장 겉면에 확정금리로 오인할 수 있는 내용을 기재했다.
또 가입서류에 실제 서명 대신 ‘서명’이라는 글자를 기재하였음에도 은행은 이를 확인하지 않았고, 정상 녹취 확인 및 누락 내용 보완 절차를 준수하지 않고 가입을 완료했다. 녹취 점검시엔 '녹취파일 이상없음'으로 기재했다.
NH농협은행의 사례에선 ▲70대 고령자의 투자성향을 부실하게 파악하는 등 공격투자자로 분류하고 ▲손실 위험 등을 왜곡하여 설명했으며, ▲통장 겉면에 확정금리로 오인할 수 있는 내용 기재 및 고령자 보호기준 등을 미준수했다.
이같은 금융 불완전판매는 비단 홍콩ELS 사태 뿐만 아니다. 현재도 각종 투자 상품 캠페인이나 보험가입 등 금융회사의 각종 '불완전판매' 위험에 노인들이 노출돼 있다.
"금융회사 직원들이 판매 성과에 내몰리고, 그러다보니 불완전판매의 유혹에 노출되고 있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단순히 불완전판매 뿐만 아니다.
은행 직원이 고객의 서명을 위조하거나 서류를 조작하는 횡령 등 금융 내부통제 사고도 계속 드러나고 있다. 현재 국내 주요 은행들을 중심으로 내부 결재시스템을 지정맥 등 '생체 정보'로 전환하는 등 내부통제시스템을 대폭 정비하고 있다. 내부 직원의 결재 권한의 일탈이나 수기(手記) 조작을 막기위한 조치다. 금융 당국이 지시한 금융업종별 내부통제 강화 조치의 일환이다.
그러나 이같은 내부통제 시스템 보강이 어느정도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실제로 이렇게 부산떨지 않아도 금융회사 내부적으로 이미 이를 막을 수 있는 내규는 거의 대부분 정비돼 있기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7월26일자로 국민은행에 과태료 6000만원을 부과하고, 관련 직원들에게는 면직 및 정직 3개월을 처분하는 제재 조치를 내렸다.
그 내용을 보면 이같은 일선 현장에서 규정 일탈의 심각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금감원에 따르면, 국민은행 모지점은 지난 2021년 7월6일부터 2022년 12월2 기간 중 차주 42명에게 총 67(168억5800만원)의 대출(여신)을 취급하는 과정에서 부적절하게 여신을 심사했다.
이 은행의 A팀장은 차주들로부터 제출받은 재직‧소득증빙서류가 허위임을 알면서도 이를 근거로 대출을 취급했다. 또 서류를 복사한 후 오려 붙이는 등의 방법으로 일부 차주의 소득증명서 4부 및 예금잔액증명서 1부를 직접 변조하기도 했다.
지난 6월 논란이 됐던 우리은행 김해지점의 180억원 횡령 사건의 경우, 내부 직원이 고객의 서명을 위조하면서 시작됐다. 최근 손태승 전임 회장의 친인척 대출 과정에서 나타난 수백억원 규모의 부정적 대출 논란도 결국은 규정 일탈의 결과다.
이러한 갖가지 형태의 금융권 내부통제 사고도 노인 고객이 상대적으로 더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금융권, '신뢰할 수 있는 대고객 프로세스 혁신'… 초고령화시대 숙원 과제
'초고령화 시대'로 진입하면 금융회사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아진 실버 고객들을 응대해야한다.
그간 금융권은 RPA(로봇프로스세스자동화) 등 첨단 기술을 통해 '업무의 효율성 제고'를 위한 프로세스 혁신(PI)에 주력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고객 신뢰의 확보' 관점에서 새롭게 접근해야할 시점이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문이다.
앞선 사례에서 보듯, 금융회사 내부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횡령과 배임과 같은 내부통제 사고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것을 막기위해 어떻겠든 혁신적인 방안을 짜내야하는 것이 최고경영자의 책임이다. 더구나 비대면 금융 비중이 높아지고, 'AI 윤리' 문제까지 대두되면서 이는 중차대한 숙원 과제가 됐다.
전 금융권에 걸쳐 노인 고객들을 위한 비대면 디지털뱅킹 교육, 보이스피싱 예방 교육, 안전한 노후자산관리세미나 등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론 실버 고객을 보호하기가 역부족일 뿐만 아니라 100% 정확한 대응이 될 수도 없다. 금융회사 스스로가 노인 고객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을수 있는 수단 마련은 아직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앞으로 이렇게 말하는 은행 직원은 112로 신고하세요."
어쩌면 이런 황당한 표어를 은행 지점이나 홈페이지에 의무적으로 게시해야하는 시대가 올수도 있다.
직원의 일탈을 강력하게 제어할 수 있는 강력한 프로세스 혁신 추진, 또한 책무구조도와 같은 강력한 금융회사 임직원들에 대한 신분제재 규정을 강화하는 것, 그것이 '신뢰 산업'으로 규정된 금융회사의 진정한 밸류업으로 재정의 된다.
신뢰를 얻기위한 스스로의 혁신, 결코 쉽지않은 과제에 우리 금융권은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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