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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밸류業금융⑬] 이복현의 거친 '직격'… 결국 금융지주회장 '제왕적 권력' 겨냥했나

강기훈 기자
(왼쪽부터) 양종희 KB금융 회장,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 이석준 농협금융 회장
(왼쪽부터) 양종희 KB금융 회장,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 이석준 농협금융 회장

[디지털데일리 강기훈 기자] 최근 우리금융을 비롯한 주요 금융지주사들의 경영진들이 좌불안석이다. 대형 내부통제 사고가 끊이지 않고 터지면서 대외 신뢰 추락은 물론 그동안 어렵게 쌓아올린 밸류업(Value Up)의 공든탑 마저 무너질 위기다.

이런 가운데 금융회사의 내부통제 사고를 개인의 일탈로 치부할 수 있지만, 금융지주회장에게 집중된 '제왕적 권력'이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더구나 이같은 제왕적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이사회의 사외이사들도 회장이 원하는대로 대부분 찬성표를 던짐으로써 거수기로 전락한 지 오래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금융지주와 NH농협금융이 금융당국 사정 칼날의 직접적인 타깃이 되고 있다. 올해 계열사인 우리은행과 NH농협은행에서 연달아 금융사고가 적발됐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의 경우 최근 금융감독원 현장 검사를 통해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의 친인척과 관련된 28건(350억원)의 부적정 대출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농협은행에서는 올해 들어서 횡령과 배임 범죄가 4건이나 적발됐다.

뿐만 아니다. 리딩금융으로 손꼽히는 KB금융 마저도 올해 국민은행에서 올 상반기에만 3건의 배임 등 대형 내부통제 사고가 발생해 체면을 단단히 구겼다

최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우리금융이 보이는 행태를 볼 때 더는 신뢰할 수 없다"며 우리금융을 강하게 직격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수위때문에 금융권을 적지않게 술렁이게 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 원장이 우리금융 뿐만 아니라 잇달아 내부통제에 실패한 전체 금융권을 대상으로 당국이 일갈한 게 아니냐"는 게 금융권의 중론이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에서 총 32건의 금융사고가 발생했다. 이는 전년 동기 15건과 비교해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금융사고의 유형도 다양하다. 횡령·유용·배임·사기·도난피탈·금품수수·사금융알선·실명제위반·사적금전대차 등이다.

은행별로 살펴보면, 국민은행에서 11건의 금융사고가 발생해 가장 많았다. 이어 농협은행(10건), 하나은행(7건), 우리은행(2건), 신한은행(2건) 순이다.

즉 우리은행과 농협은행, 국민은행이 최근 발생한 굵직한 내부통제 사고로 금융당국의 눈에 띄었을 뿐 나머지 은행들도 크게 별다를 바 없다는 뜻이다.

◆내부통제 문제 제어되지 않는 금융지주회장의 '제왕적 권력'에서 시작

금융계 일각에서는, 이같은 내부통제 문제의 근본적인 이유로 금융지주사 회장을 정점으로 하는 지배구조 체제를 꼽는다. 금융지주회장의 강력한 영향력이 임원을 비롯한 실무자들의 눈을 멀게 하고, 예스맨만 양산한다는 지적이다.

당장 우리금융 손태승 전임 회장이 연루된 부적정 대출 건 또한 조병규 우리은행장이 사전에 이를 인지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되고 있다.

권광석 당시 우리은행장이 친인척 대출의 부당함을 상부에 보고했지만 묵살됐다는 풍문이 있고, 또 당시 부행장이었던 조 행장이 권 전 행장과 각별한 사이였기에 당연히 알지 않았냐는 게 당국이 의심하는 대목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확히 외부인이 알 순 없지만 조 행장이 부적정 대출의 사실을 알고 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며 "당국의 의심이 맞다면, 국내 금융지주사 회장의 막강한 권력을 고려한다면 현실적으로 부적정 대출을 묵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거수기로 전락한 이사회… 견제받지 않는 회장의 '제왕적 권력' 더욱 고착화

이같은 금융지주회장의 '제왕적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선 외부에서의 견제가 필수적이다. 현재로선 이같은 제왕적 권력을 견제 수단은 이사회가 그나마 유일하다. 그리고 지주사의 지분을 가진 국민연금이 스튜어트십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는 정도다.

그러나 현실적으론 견제를 기대하기 힘들다.

오히려 그보다는 이사회가 회장들의 권력에 날개를 달아줬다는 지적이 적지않은 게 현실이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5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NH농협)가 32회의 이사회를 개최했지만 사외이사가 반대표를 던진 경우는 단 1건에 불과했다.

이윤재 신한금융지주 사외이사가 지난 2월 개최된 임원 보수위원회에서 반대표를 던진 것 말고는 전부 찬성표를 행사한 것이다.

물론 외형적으로는 회장을 견제할 수 있는 이사회의 조건은 다 갖춰졌다. 일례로 하나금융의 경우 현재 10명의 등기임원 중 8명이 사외이사다. 우리금융 또한 7명 중 6명이 사외이사다.

정작 중요한 것은 이사회의 독립성이다.

이사회의 독립성을 위해 금융지주회사는 사외이사를 다른 산업군보다 많이 두고 있으나 속을 들여다보면 유명무실하게 운영되는 셈이다.

이같은 문제 의식은 사외이사들도 인식하고 있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최근 우리금융의 한 사외이사가 감시 기능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책임을 느끼고 있다고 말한 것을 알고 있다"며 "이사회라도 제대로 작동했으면 최소한 내부통제 실패 건수는 지금보단 많이 줄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쉽게 목소리내지 못했고, 뚜렷한 해법도 제시되지 못했던 국내 금융권의 지배구조의 문제가 점점 올 연말 금융가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할 조짐이다.

강기훈 기자
kkh@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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