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밸류業금융⑭]'거수기' 불명예, 금융권 이사회… 과연 경영진 거취를 결정할 수 있을까
[디지털데일리 박기록기자]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은 비단 정치 구조에만 적용되지않는다. 금융산업에서도 경영진의 독단과 전횡을 막기위한 장치의 하나로 이사회를 운영하고 있다.
독립적 이사회의 운영과 역할은 시장에서 금융회사의 가치를 높이는 중요한 밸류업(Value Up)의 수단이면서 금융 선진국을 가늠하는 척도다.
이런 관점에서 국내 주요 금융지주사의 이사회에 역할에 다시 한번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국내 금융권 이사회의 역할에 대해 시장의 기대치는 여전히 낮다. 심지어 국내 5대 금융지주 이사회를 보더라도 그동안의 행보는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최고경영진에 대한 견제 기능, 특히 금융지주사 회장의 제왕적 권력에 대한 견제 기능은 고사하고 오히려 경영진의 결정에 적극적으로 화답하는 '박수부대', '거수기'라는 오명을 들어왔다.
실제로 올 상반기 5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NH농협)가 32회의 이사회를 개최했지만 사외이사가 반대표를 던진 경우는 단 1건에 불과했을 정도로 이사회의 존재감은 없다.
이윤재 신한금융지주 사외이사가 지난 2월 개최된 임원 보수위원회에서 반대표를 던진 것이 유일한 반대표 행사로 기록됐다.
그렇다하더라도 경영진에게 직접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구조적 장치는 사실상 이사회가 유일하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가장 주목받는 곳이 우리금융지주사 이사회다. 올해들어 발생한 일련의 사태와 관련, 우리금융 경영진에 대한 평가를 이사회가 어떻게 내릴 것인가가 관심의 촛점이고, 이를 통해 경영진의 거취에도 결정적 영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금융 이사회에 쏠리는 관심
우리금융의 경우 앞서 지난 6월 우리은행 김해지점에서 발생한 100억원대 횡령 사건외에 최근 손태승 전임 회장의 친인척 법인 관련 부적정 대출 파문이 지속되면서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과 조병규 우리은행장의 거취까지도 거론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특히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우리금융을 신뢰할 수 없다"는 고강도 발언에 이어, KBS 대담프로에 나와선 "경영진에게 책임을 묻겠다"며 강경한 입장을 이어나간 바 있다.
이후 우리금융 안팎으로 최고경영진의 책임론이 크게 비등했다.
이와관련 현재 우리금융 이사회 멤버중 누구도 이와 관련한 언급은 없었지만, 임 회장의 퇴임을 기정사실화한 속칭 '지라시'가 나돌기도 했다. 또 일각에선 음모론이 크게 부각되기도 했다. 음모론이란 이제는 사라진 것 같았던 우리금융그룹내 계파별 권력 암투와 관련된 것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최근 또 다시 미묘한 반전도 있었다.
"경영진의 거취 여부는 이사회가 결정하는 것"이라며 임 회장의 자진 사퇴론에 선을 긋는 목소리가 일각에서 커진 것이다.
이런 가운데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지난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우리금융)현 경영진의 거취 부분은 우리금융이사회, 주주총회에서 판단할 사항”이라고 밝혀 주목을 끌었다. 경영진 거취의 형식적 권한은 이사회의 고유 역할로 못박은 것이다.
김 위원장은 “금융감독원에서 현재 검사가 아직 진행중이고 우리금융에 대한 정기 검사도 곧 시작할 것으로 생각돼 진행 상황을 같이 면밀히 살펴보겠다”고 말해 우리금융 경영진의 거취에 대한 금융 당국의 개입은 없을 것임도 확인했다.
결국 우리금융 경영진 거취에 대한 결정은 이사회의 몫으로 남게됐다.
현재 우리금융 이사회는 8명중 7명이 각 분야별 직능을 대표하는 사외이사로 구성됐으며, 이는 외견상 그룹 내부의 정서에 휘둘리지 않도록 독립성을 확보하기위한 차원이다.
현재 우리금융 사외이사는 정찬형(포스코기술투자 사장), 윤인섭(푸본현대생명이사회 의장), 신요환(키움증권 부사장), 윤수영(신영증권 대표), 지성배(IMM인베스트먼크 대표), 이은주(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박선영(동국대 경제학과 교수)7명이다.
우리금융지주 이사회에 주어진 기능과 역할은 막강하다. 감사위원회를 포함해 리스크관리위원회, 보상위원회, 임원후보추천위원회, 자회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 ESG경영위원회 등 6개 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권에선 이같은 권한을 가진 우리금융 이사회사가 독립적으로 최고경영진의 거취(진퇴)와 관련한 사안을 직접 주총 안건으로 올리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한 금융지주회사 관계자는 "그동안 국내 금융권에서 나타난 이사회의 행태를 봤을때 쉽게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이사회의 실질적인 역할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결국 현재로선 우리금융 최고경영진의 거취를 놓고 어떤 상황이 전개될 것인지 가늠하기 힘들다는 것으로 결론지어진다.
◆허울뿐인 이사회의 독립성… 메리츠화재 사례를 보니
5대 금융지주의 경우와는 다소 다르지만 최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메리츠화재의 사례를 보면, 경영진을 견제하기위한 이사회의 독립성과 감시 역할이 현실적으로 유명 무실함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최근 금융감독원은 메리츠화재에 경영유의 18건, 개선 16건의 제재를 결정했다.
금감원이 발표한 검사 결과에 따르면, 메리츠화재 대표이사는 검사대상기간 중 메리츠금융지주의 대표이사를 겸직하고 있어, 이사회는 금융지주 및 계열사와의 거래에 있어 이해상충 발생 여부 및 회사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 등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이사회 의장인 대표이사는 검사대상기간 중 총 11회에 걸쳐 회사와 금융지주간거래에 대한 의결권을 직접 행사한 사실이 드러났다.
또한 계열사와의 거래에 있어 사외이사의 문제 제기에 대해 명확한 근거 제시 없이 대표이사가 직접 답변한 사례도 있었으며, 해당 사안에 대해 다른 이사들은 별도 문제 제기나 추가 사실관계 확인 없이 안건을 의결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이사회 운영의 독립성‧실효성이 저해되고 경영진에 대한 효과적감독 역할이 미흡했다는 것이 금감원의 진단이다.
특히 금감원은 사외이사의 역할 및 이사회 운영 절차에 대한 관리 강화 필요성도 지적했다. 즉 이사회 의장이 사내이사로서 회사의 대표이사와 금융지주의 대표이사를 겸임하고 있어, 효율적인 경영진 견제 기능을 높이기위한 선임사외이사 등 사외이사의 적극적 역할과 책임이 요구되는 상황이었지만 그렇지 못했다.
즉 검사대상기간 중 선임사외이사가 사외이사회를 소집한 사례가 없고, 이사회의결시 사외이사가 안건에 대한 반대 의견을 제시한 사례를 찾아 볼 수 없는 등 사외이사의 업무수행 실적과 역할이 미흡했다고 금감원은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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